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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레지던시 전시 ] 2019 창제작 발표 프로젝트 8. 윤성필, <불합리한 인식>

전시기간
2019-07-09 ~ 2019-07-31
시간
12:00-18:00
장소
인천아트플랫폼 창고 갤러리
관람료
무료
문의
032-760-1018

2019 IAP 창·제작 발표 프로젝트 8.

윤성필, <불합리한 인식 (Irrational Recognition)>

인천아트플랫폼은 2019년도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입주 예술가 창제작 프로젝트' 통해 10 입주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합니다.

여덟 번째 프로젝트로 윤성필 작가의 개인전 《불합리한 인식》을 진행합니다.


윤성필 작가는 그 동안 조각, 설치, 키네틱아트, 페인팅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사진 연작 '불합리한 인식' 을 통해 작가가 이제까지 작업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우주관, 세계관 등의 거시적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개개인을 바라보는 미시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작가는 다양한 인물사진을 이용하여 작가 자신과 타인의 혼재된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흑백 인화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구현하여 탈색한 후 실크스크린을 이용하여 다른 이의 인물 이미지를 중첩합니다. 이는 대상체의 은(Silver) 입자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대상체의 이미지를 구현하게 되는 구조를 나타냅니다.


윤성필, <불합리한 인식 (Irrational Recognition)>

▶ 일 시 : 2019년 7월 9일(화) ~ 7월 31일(수), 12:00-18:00

     * 오프닝 리셉션 : 2019년 7월 12일(금), 오후 6시

▶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 비평글

그 어느 누구도 자전하고 있는 땅을 느낄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그 위에서 살고 있다. 작가 윤성필은 처음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구슬이나 동전을 제시하며 그것이 남기는 흔적을 볼 것인지 아니면 움직임 자체를 볼 것인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너와 내가 하나 되는 발광체들을 보여주며 사람의 형상을 쫓을 것인지 혹은 변화 자체를 볼 것인지 우리의 두 눈을 두드린다.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며 그림자를 잡는데 골몰할 것인지 태양 아래 서서 스스로 길어지고 짧아지는 그림자를 볼 것인지 그는 묻는다.

저기 커다란 두 눈이 보인다. 나를 응시하는 저 두 눈을 나 역시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두 눈을 품은 얼굴뿐이지만 그가 시선 넘어 가리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행위 자체가 아닐까 한다. 무엇이든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가 만든 초상들을 보다 보면 내가 보고 있는 존재와 그리고 세상에 의심을 품는 나를 본다. 단순한 것은 없다. 단순하게 인식할 수는 있을지언정 실상 단순한 것은 없다. 하나하나 천천히 바로 보면 뚜렷한 초점은 이내 흐릿해진다. 마주한 인물은 인물들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백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누군가의 얼굴 위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올라가 있다. 종이에 먼저 찍힌 인물의 정보 테두리 안에서만 두 번째 인물이 드러난다는 특성은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 맺기를 대변한다. 세상 가득한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선 나부터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 앞서 내가 누군지 이해한다는 것은 진실로 가능한 일인지 묻는다. 어제와 오늘의 나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도 10년 전, 혹은 아주 어릴 적과 지금, 그리고 먼 미래의 나는 분명 다르다. 나 스스로를 이해한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는 이 순간에도 나라는 존재는 변화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온전히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매 순간 움직이는 나라는 존재를, 타인을,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히 볼 수 없다. 텅 빈 화면에 보이는 것이 있다. 그의 하얀 초상은 내게 죽음을 연상케 하지만 동시에 탄생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 홀로 죽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모두가 언젠가는 죽을 터이지만 분명 새로이 태어나는 누군가들도 이 영겁의 흐름을 함께 하고 있다. 드러나고 있는지 지워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과 더불어 탄생, 나아가 변화 자체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불상의 출현은 어쩌면 당연하다.

믿어야한다. 눈을 감고 있어도 세상은 존재한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여기 있고 대낮에 별들은 보이지 않지만 역시 저기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기 힘든 것이라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보기 힘들 뿐 저 끝에 있는 건 확실하다. 산산이 조각나고 흙으로 돌아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알 수 없어 두렵다. 하지만 두려운 인생이고 알 수 없는 것은 탄생 또한 매한가지 아닐까. 작가 윤성필은 두려울지언정 정면으로 마주 보기로 한다. 너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죽음에서 탄생을 읽는 그의 인식은 비록 불합리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전하는 땅 위에 끊임없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그림자의 경이로운 생동을 새로 볼 수 있게 하는 합리적 선택임에 동의한다.

허우중